나이아가라 폭포에 과연 몇 명이나 관광을 올까?
우리 나라 관광지처럼 매표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정확한 통계를 잡기 어렵지만, 폭포 앞 주차장 매표소와 공원 구역 내 각 상점에서 모으는 통계 등을 근거로 하여 나이아가라 공원관리위원회가 집계하여 발표하는 통계 자료에 따르면, 한 해 평균 최소 1,300만 명 정도가 이 폭포 공원을 방문한다고 한다. 캐나다 전체의 인구가 이제 약 3,300만 명 정도라 하니 이 정도면 진짜 보물이라 할 만 하다.
온타리오주에 이렇게 엄청난 수익을 쏟아 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이 나이아가라 폭포에 내가 얼마를 쓰고 가는지는 알아도 몇 번째로 방문한 것인지는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.
그러나, 세상 모든 일이 대개 그러하듯이 나한테는 영수증만이 남아 있지만, 처음 온 사람들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후세가 참고할 만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.
나이아가라 폭포가 서구에 알려지게 된 것은 초기 북미 대륙 개척의 선봉자 Samuel de Champlain에 의해서다. 1604년 현재의 온타리오호를 탐험한 그는 원주민들에게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한 풍문을 듣고 엄청나게 거대한 폭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 그러나, 그는 실제 답사는 하지 못 한 상태에서 단지 원주민의 말을 인용하여 “그 끝을 알 수 없고 땅과 닿은 곳을 볼 수가 없는 이 거대한 호수에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못 한 큰 물이 쏟아지는 폭포가 있다더라…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그쳤다.
사실, 그 당시 탐험가들의 보고서에는 "이랬다, 저랬다" 보다는 "~~~카더라" 가 더 많이 나왔다고 한다. 그 점, 이해해 주어야 한다.
그 뒤를 이어 1678~1679년에 프랑스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북미 대륙 속 깊이 탐사를 하였던 Louis Hennepin 신부가 미시시피강의 원류를 찾아 온타리오호수와 이리호수의 경계 지역을 탐험하다가 드디어 풍문으로만 돌던 나이아가라 폭포를 최초로 직접 확인하였다.
이 때의 에피소드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있는 IMAX영화관에서 상영하는 IMAX 영화인 “Niagara: Miracles, Myths, and Magic”에 자세히 나온다. (※ 고국에 계신 분들 중 혹시 나중에 나이아라가 폭포 관광을 가실 분들은 시간 내어 이 영화를 보시는 것도 괜찮다. 나이아가라의 역사와 지형, 여러 가지 모험에 대하여 재미있고 실감나게 보여준다. 나이아가라와는 관계 없으나, IMAX는 캐나다의 기술로 최초로 개발된 것이다.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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▲ (자료 사진) 나이아가라 폭포를 최초로 발견한 Hennepin 신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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▲ (자료 사진) 신부 일행이 탐사 당시 사용하였다는 옛 지도
원주민에게 선교를 하기 위하여 다니던 Hennepin 신부 일행이 이리호수 근처로 오게 되었다. 지금이야 물론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당연히 이 부근은 밀림에 가까운 숲 속일 뿐이었다. 원주민을 찾다 지친 신부 일행이 캠프를 차리고 쉬던 중 저 멀리서 마치 천둥 소리와도 같이 우르릉 하는 소리가 계속적으로 들려옴을 알아 차렸다. 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사흘을 헤메이다가 밀림 속에서 찾아 낸 것이 바로 이 나이아가라 폭포였던 것이다.
▶ 그렇다면 우리 나라 사람은 누가 언제 최초로 왔을까?
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구경한 사람은 예상 외로 아주 오래 전에, 가까운 미국인들도 별로 관광 오지 못 하던 그 시절에 이 멀리까지 와서 관광을 하게 되었다.
1902년, 나라의 운명이 일제에 의해 침탈당하던 암울한 그 당시에 대한제국 광무황제(고종)께서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의 에드워드 7세(엘리자베스 2세의 증조부)의 대관식을 경축하기 위해 축하사절단(단장 의양군(義陽君) 이재각(李載覺) 포함 총 4인)을 파견하였는데, 이들이 처음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한 한국인으로 추정되고 있다.
이 사절단의 여정을 보면 우리들의 할아버지들께서 참으로 대단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. 요즘 사람일지라도 이 할아버지들의 기개를 따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.
이 분들은 광무황제의 황명을 받은 후
이들 사절단 할아버지 일행은 뱅쿠버에서 바로 대륙횡단철도를 타고 광활한 대륙을 건너셨다. 며칠 후 5월 20일 토론토에 도착하였는데 그 날로 바로 다시 기차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 그 곳에서 숙박을 한다.
이 분들은 다음 날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한 후 당일로 토론토로 귀환하여 수 일 후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으로 가셨고 다시 그 곳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. 또 다시 갖은 고생을 겪은 후 런던에 도착하여 한 달간 공식 일정을 마친 후 조선으로 귀환할 때는 프랑스를 거쳐 유럽을 관통하고 스웨즈운하를 통과하여 인도양을 항해한 후 스리랑카, 홍콩을 거쳐 그 해 8월 20일에 다시 인천항으로 귀환하였다.
지금으로부터 약 106년 전인 1902년 그 옛날에 조선의 할아버지들께서 4개월 반 동안 세계일주 여행을 한 것이다.
이 분들, 당시 그렇게 멀리 외국여행도 해 본 경험도 별로 없었을 것이며, 달러나 파운드도 별로 없었을 것이고, 영어도 시원치 않았을 텐데, 호텔 예약이나 제대로 하고 교통편이나 제대로 잡아 타고 다니셨을까? 상상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.
이 분들이 당시 여비로 4만원이라는 거금을 사용하였다는데 정작 영국에 도착해서는 에드워드 7세의 와병으로 인해 대관식에는 참석하지 못 하였다 하여 혈세를 낭비하였다고 그 당시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한다. 그 분들은 괴로웠겠지만, 어쨌든 후손들로서는 덕분에 귀중한 자료를 하나 물려 받았다.
이 들 중 사절단의 부대표였던 이종응이, 일기를 쓰듯이 여행 기록을 작성하여 귀환 후 황제에게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기록이 바로 “서사록(西槎錄)”으로 현재 부천향토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. 이 것은 원래 순한문체로 쓰여져 있는데, 후손들이 알기 쉽도록 한글로 고쳐 쓴 것이 “서유견문록”이다.
이 기록을 통해 이 분들이 당시의 서구문물을 본 소감과 현재의 느낌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든다. 잠시,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토론토와 나이아가라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셨는지 살펴 보자.
사절단(단장 의양군 이재각, 부단장 이종응, 번역
다음 날 네 분은 마차를 타고 폭포 구경을 하러 갔다. 이 분들이 보고 기록한 여행기에서 이 부분을 잠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.
(※ 이하 내용은 앞서 언급한 부천향토박물관에 보관 중인 서사록(西槎錄)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였으며, 괄호 안의 註는 필자가 넣은 것입니다.)
여기부터 ▶▶▶
5월 21일(4. 14) 흐림
물길의 원천지는 천여리이고 수세는 호대(浩大)하다. 이곳 물길은 좁고 양쪽 언덕 석벽의 넓이는 수십간에 지나지 아니하고 지형의 생김새가 말발굽 모양 같다 해서 폭포이름을 ‘마제(馬蹄)'라 일컫고 있다. (註; 예스런 표현이 재미있다. 영어로도 Horseshoe falls라 부른다.)
석벽이 홀연히 깍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이 백여장(丈) 서 있었으니, 물길이 절벽에 걸린듯이 쏟아져 내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하다. 물길의 기세가 서로 격돌해서 물빛은 혹은 푸르게 혹은 붉게 빛을 발해서 수 백개의 무지개가 걸린 듯하다. 폭포 아래 푸른 강물 위에는 흰 눈 같은 물보라가 공중에 가득하니 실로 천하 장관이다.
강 위에는 4-5개의 철교가 완연하게 걸쳐있는데 마치 긴 무지개가 물을 마시는 듯하다. 강 양쪽 언덕을 따라 철로가 있고 전차가 왕래하고 있었다. 어떤 사람은 크고 작은 윤선을 타고 강을 오르내리기도 하고, 강 양쪽 도로에는 마차 행렬이 줄을 잇고 있어서 하루 유람객수가 수 천명이 될 것 같다. 강 남쪽 언덕에는 수 십층 높은 누각(樓閣)이 서 있었다.
우리 네 사람은 이 높은 누각에 올라 난간에 의지하여 내려다보니 공중에 흐릿한 기운(風烟)이 눈에 가득 차서 잠시나마 하늘 끝 만리 타국에 유람하는 고통을 잊게 했다. 이윽고 누각 주인이 상하 우의(雨具) 네 벌을 가지고 와서 입으라 한다. 우리는 그 뜻을 알지 못 하고 받아서 입었다. 주인이 앞장 서서 우리를 안내하여 강 언덕에 이르니 한 칸 철옥(鐵屋)이 있었다. 주인이 우리 일행에게 들어가기를 청하기에 들어갔더니 철옥 안에서 갑자기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나고 철옥은 지하로 수 십길(丈)을 내려가더니 멈추어 섰다.
주인이 먼저 나가서 우리에게 나오라고 청하기에 나가보니 칠흑 같은 동굴이었다. 우리는 지하 동굴 가운데로 백여보 따라가다가 햇빛이 들어오는 곳을 바라보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수 만개의 천둥 치는 굉음이 울리고 눈보라 같은 물보라가 어지러이 흩어져 사람의 이목을 깜짝 놀라게 했다.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니 우리는 저 폭포수 석벽 아래에 서 있었다. 겁이 나서 우리는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. 곧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와 서로 마주보니 진흙탕에서 싸우던 짐승처럼 보였다. 대개 주인이 안내하던 길은 바로 폭포수 남쪽 언덕에서 굴을 파서 터널길을 만들어 폭포수로 통하게 한 것이다. 이에 우리는 의관을 정제하고 강을 따라 수 십보를 내려가니 사진관이 있었다. 우리 네 사람은 폭포수를 배경으로 앉아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돌아와서 기차를 타고 퀘벡항으로 돌아 왔다.
◀◀◀ 여기까지
마제(馬蹄)폭포는 알겠는데, 누각 주인은 누구고 철옥(鐵屋)은 또 무엇인가? 철옥은 감옥이 아니라 폭포 뒤로 들어갈 수 있는 터널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말한다. 이 터널로 들어가는 투어가 바로 요 동네 온 사람은 누구나 다 한번씩은 들어 가보는 그 유명한 “Journey behind the falls”이다.
공교롭게도 바로 그 해 1902년에 이 엘리베이터가 처음 설치되어 가동되었다. 옛 분들이 그 당시의 어투로 표현하였지만 오늘 날에도 마음에 와 닫는 느낌! 그 것을 준다.
19세기 초만 해도 간간이 이루어지던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은 그저 멀리서 탄성만 지를 수 밖에 없었다. 폭포에 접근하기 어려워 답답해 하던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쓰러진 나무를 붙잡고 다소 위험하게 다가 가는 것 말고는 가까이서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.
그래서, 1818년에 처음 폭포 옆 절벽에 계단과 전망대를 설치하였는데, 본격적인 개발의 필요성을 느낀 나이아가라 공원 관리위원회에서 이 계단을 허물고 수력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이 1887년이다. ▲ (자료사진) 초기 Journey behond the Falls 전망대의 모습
폭포 뒤로 돌아 들어갈 수 있는 최초의 터널은 1889년에 건설되었다. 그 후 1902년에 전기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인 철옥(鐵屋)이 설치되어 우리들의 용감한 할아버지들께서 바로 이 것을 타실 수 있었던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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▲ Journey behind the Falls, 터널에서 직진, 폭포 측면 전망대에서 본 Canadian Horseshoe Falls
요즈음도 변함없이 쫘~악 쫙 쏟아 지는 마제(馬蹄)폭포에 가면 이 분들 이후 나는 과연 몇 번째 방문객일까 한가롭게 생각해 보면서 한 편으로는 그 옛날 나라를 잃어 버릴 위급한 시절에 머나 먼 타국 땅으로 오셨던 그 분들의 까맣게 타 들어 갔을 속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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◑◐ 이 글을 작성할 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부천향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귀중한 자료의 일부를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. ◐◑
![사용자 삽입 이미지](https://t1.daumcdn.net/tistoryfile/fs6/5_14_6_26_blog136219_attach_0_2.gif?original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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